영화의 배경으로 몇 차례 소개된 바 있는 '폼페이'라는 도시는 '화산폭발'로 사라진 도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지난 2014년에 개봉했던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영화에서도 화산폭발이라는 큰 자연재해를 바탕으로 그 위에 검투사, 사랑, 우정 등의 이야기를 가미했었다.
(이탈리아 현지 가이드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상한 영화라고 했는데 그 말에 충분히 공감되더라.)
아침 일찍 로마 인근에 있는 호텔을 떠나 폼페이까지는 약 3시간 30분가량이 소요되었다.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주에 있는 폼페이는 원래 항구도시였지만, 화산폭발로 인해 지형이 바뀌어 '내륙'에 속해있다.
도착하자마자 점심식사를 하게 될 식당 화장실을 이용하고 곧바로 걸어서 폼페이 유적지 입구로 향했다. 입구는 2곳인데 어느 방향으로 들어가도 상관은 없다.
이탈리아는 어느 유적지를 가더라도 꼭 이탈리아인 가이드 한명이 따라다니도록 되어있다. (그냥 따라다니기만 할 뿐 실제로 하는 건 거의 없다.)
매표소에서 보이는 폼페이 유적지~ 사실 유적지라고 해봐야 단순히 눈으로 보기하고 그 당시의 역사에 관심이 없다면 지루하고 재미없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화산폭발'이라는 대재앙을 겪은 도시이었기에 이탈리아 여행을 하기 전부터 이곳에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에 한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섭섭~ 하지만 우리에겐 똑똑하고 박식한 현지 가이드가 있어서 따로 저런 서비스가 필요 없었다.
이탈리아나 터키나 '패키지여행'으로 가보면 알겠지만, 유적지와 박물관 등을 갈 때 이어폰을 꽂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2015년 9월 초 폼페이 유적지의 입장료는 13유로였다. 할인을 적용받으면 7.5유로~ 아마 시기마다 조금씩 다르게 적용되는 듯하다. 입장시간은 오전 9시(4월~10월), 오전 8시 30분(11월~3월)
가이드를 따라 천천히 이동 중 눈 안에 들어왔던 폼페이 도시의 흔적들이다.
얼핏봐서는 이게 지진으로 생긴 피해인지 화산폭발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이런 유적들이 땅속에 묻혀있었고 이 만큼이나 발굴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여기는 마차가 다니던 도로다. 바닥을 보면 돌과 돌 사이에 하얀색으로 반짝이는 것이 있는데..야밤에 달빛이 반사되어 길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고 한다.
가이드옆에 보이는 징검다리는 사람이 건너다니는 길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돌길이 많은 이탈리아~ 여행 중에 그 부분이 제일 기억이 남는다.
폼페이의 하늘도 정말 화창하고 좋았다. 햇볕이 지나치게 뜨거웠던 점 빼고는 여행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그림이 가득했다. 저 멀리 중간쯤에 보이는 산이 바로 화산폭발을 일으킨 '에수비오'산이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저곳은 '제우스'신전이다.
그나마 복원되어서 기둥의 흔적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중간쯤을 보면 제우스신의 얼굴 조각도 보인다. 광장에서 제우스 신전 왼쪽을 보면 큰 곡물 창고가 보이는데, 현재는 폼페이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도자기들이 가득한 곡물창고..
석고로 재탄생된 화석들이 그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몸이 비틀린 개를 비롯한 어린아이 그리고 앉아서 기도하는 어떤 사람 등등.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기록에 의하면 고온 가스와 열 구름에 질식하거나 뜨거운 열에 타죽은 경우가 대다수..
에수비오산의 화산폭발로 인해 폼페이 인구의 약 10%인 2000여 명이 사망했고 15세기까지 폼페이의 존재가 잊혀졌다고 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재앙'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폼페이 출신이라는 사실을 감추는 이들도 많았다.
이런 모습의 건물들은 무너진 기둥들을 끼워맞춰서 복원한 것이다.
그 시대 번성했던 폼페이의 모습을 상상력으로 재현한 그림을 보여주면서 설명 중인 현지 가이드~
미이라의 모습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어찌나 덥던지 이렇게 한곳에 모여서 설명을 할 때는 항상 그늘 속으로 피신해서 진행했다^^
이탈리아 폼페이! 화산폭발로 사라진 환락의 도시
길게 이어지는 마차 도로~
폼페이가 '환락'의 도시라는 이미지도 갖고 있는데..아마도 농업, 상업 중심지로 번창했지만, 제정 로마 초기에 로마 귀족들의 별장이 많이 지어졌고 여름이나 겨울에 '휴양지'로 성황을 이루었기에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길 주변을 보면 '사창가'나 '술집'으로 이용되었던 건물들이 상당히 많다.
길 중간쯤에 보이던 수돗가.. 물을 사용하는 방향에 따라서 어느 쪽 손을 올려놓은 채 사용했는지 그 모습들이 보이더라. 사진을 자세히 보면 손자국으로 움푹 팬 세월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폼페이의 인구는 약 2만~5만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79년 8월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2~3m 두께의 화산돌과 화산재가 시가지 전체를 덮어버렸다고 한다.
도시의 존재 사실조차 잊혀졌지만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1592년이다. 폼페이 위를 지나는 운하 건설중에 건물과 회화 작품이 발견되면서였다.
여기는 공중목욕탕의 내부 모습이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으로 온도조절과 조명효과를 얻었고 내부 구조와 대리석 재질을 보건대 그 당시에는 상당히 호화스럽고 귀족들이 주로 이용했던 것 같다.
(그런데 목욕탕 내부 관람통로가 좁아서 조금 지체되는 일도 있음.)
목욕탕에서 빠져나와 다시 이동 중...돌 길 위로 마차가 지나다녔던 흔적도 보였다. 사람이 다니는 길과 높이차가 있는 이유는 아마도 물이 이곳으로 흘러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건 어느 빵집의 '화덕'이라고 한다. 구워진 빵이 화석으로 발견되기도 했다는데..얼마나 순식간에 화산폭발을 겪었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16세기 말부터 발굴이 시작되고 1748년에 본격 발굴했지만, 독점적인 발굴 사업이었기에 중요한 유물이 도굴되거나 가치의 여부에 상관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1861년에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폼페이 발굴이 제대로 진행되기 시작했고 여전히 발굴진행중인데 도시의 4/5이 모습을 드러낸 상황이다. 대부분 나폴피 미술관에 소장..
여기는 폼페이의 원형극장이다. 지난 터키 여행에서도 비슷한 곳을 찾았었는데..역시 로마 제국시대의 영향이 컸나 보다. 비록 소규모의 원형극장이지만 상당히 과학적으로 설계된 듯.
실제로 음악을 전공했다는 현지 가이드가 원형극장 무대 중앙에 서서 '오 솔레미오'를 열창했다.
가이드의 의도는 관람석 위치에 따라서 소리가 어떻게 다르게 들리는지 알려주기 위함이었지만 이 뜬금없는 상황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용기와 노래 실력에 감탄했다. 주변에 있던 서양인 관광객도 박수를 ㅎㅎ 세상에 이런 가이드가 어디 있으려나?^^ 이런 것도 여행의 재미다.
폼페이 유적지의 마지막 코스는 '검투사'들이 갇혀있던 방들과 검투 연습을 하던 장소였다.
폼페이가 귀족들의 휴양지로 명성이 자자했기에 그들의 오락적 재미를 만끽해줄 검투경기도 많이 열렸던 모양이다.
이 곳에 있던 순간 문득 영화 '글래디에디터'나 미드 '스파르타쿠스'가 생각나더라. 어떻게 보면 '노예'가 존재했던 시절은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깝고 부끄러운 역사중 하나다.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를 빠져나가는 출구 근처에는 특이하게 생긴 소나무들이 보였다. 일부러 그렇게 가지치기를 한듯.
유명 관광지인 만큼 주변에는 기념품 가게도 많고 과일가게도 많았다.
실제로 이탈리아 폼페이를 방문했던 느낌은 뭐랄까..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그래도 화산폭발로 사라졌다고 발굴된 도시에 와서 발도장을 찍고 갔다는 추억에 만족^^
폼페이 관광을 끝내고 이날 우리의 남은 일정은 '소렌토'까지 가서 배를 타고 '카프리섬'에 들렸다가 '나폴리'로 이동해서 다시 '로마'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